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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맞을 때 가장 생각나는 북한 생활
올해 들어 최고 추위라고 하네요. 수도가 얼 정도네요.
추울 때마다 가장 생각나는 것이 북한에서 살 때입니다.
1977년 2월 사리원에 출장 갔었는데
냉기 흐르는 거리와 텅 빈 백화점이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몇 개 안 되는 식당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밥 먹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손님이 300명이라면 밥은 100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손님이 많든 적든 국가가 제정한 밥그릇만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밀고 당기고 힘을 다 빼며 식 표를 겨우 사게 되었나 했으나
“다 떨어 졌습네다”하며 문이 닫힙니다.
얼굴 고운 여 판매원이지만 아주 매정하게 보였습니다.
북한 안에 북한인 특별 대우 평양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앙당 작은아버지 집에 가보았는데
작은어머니가 그럽니다.
“평양도 이젠 빤쯔, 치약 하나라도 배급제로 넘어 갔다야!”
식량만 배급제가 아니라 상품도 배급제라는 것입니다.
평양 시민도 배급제로 제한되었으니
외부인들은 아예 물건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큰 평양 백화점들도 진열(전시)상품만 있지 파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물자 고갈은 겉으론 평화, 속으론 전쟁 준비하던 1971년부터 급격하게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7년 지난 1977년 얘기입니다.
그 정도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과정이었고
마침내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수백만 아사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여기 식으로 보면 북한은 1970년대에
경제난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나야 정상이었습니다.
탈북하여 안 사실이지만 남조선은 이때부터 한창 부흥할 때입니다.
먹는 걱정이 우선인 북한입니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추위라고 하기도 합니다.
식량난에 설상가상이 연료난인 것입니다.
연료난이 민둥산 주범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어지니 곡집과 낙엽, 풀을 긁어 땝니다.
거름으로 될 순환 고리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거름 없는 땅의 척박화로 식량난은 가중됩니다.
이런 악순환이 70년 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일련에 내부 개혁 조취는 있지만 개방이란 밑 바침이 없으니
말짱 도루묵입니다.
개방이란 흐름에 역행된 북핵, 미사일 개발로 더더욱 역천자로 갑니다.
이런 역천자 김정은 정권이 사라져야만 악순환은 끊어질 것입니다.
이민복 (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