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에 의한 식민지 확장과 강력한 개방 압력으로 조선은 망국의 길에 있었다.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변화를 주려고 했으나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의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그 중심에 태어나 자라고 애국심으로 불탔던 안중근 의사를 다시 한 번 조명해 보면서 자유대한민국이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통하여 자유국가로 건국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현실에서 국민들이 가져야 할 나라사랑에 교훈과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모함을 받아 서울을 떠나는 부친을 따라 여러 곳으로 방랑하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부친의 애국정신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는 큰 뜻을 키웠다. 청년 시절 안중근은 서양의 발달된 문화와 접촉을 하면서 계몽 교육으로 나라를 찾으려고 하였다.
1905년에 초대 한국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정미년에 조약을 맺자 황제를 폐하고 조선군대를 해산시켰다. 북간도로 들어가 의거를 일으킬 것을 결심한 안중근은 가족들과 이별하고 용정의 명동에 자리를 잡고 무예를 익혔다.
그러나 여기서도 의병양성이 어렵게 되자 다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으로 갔다. 이곳에서 반일 의병장 이범윤을 만나 함께 창의회 이름으로 30만원의 군자금을 모으고 수많은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지방에서 1908년부터 군사훈련을 진행하였다. 안중근은 의병대장 전제덕 부대의 우군령장을 맡고 경홍의 고간원과 회령의 신간원 등지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였다.
하지만 그해 7월, 신간원 전투에서 큰 손실을 보아 부대는 궤멸되었다. 그래도 의지를 꺾지 않은 안중근은 1909년 봄,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 5적을 처단키로 맹세했다. 7인 단지동맹을 맺고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며 독립을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일찍 하얼빈역 대합실에서 긴장한 마음을 달래며 대기하고 있던 우덕순이 성사할 기회를 놓치자 자기 외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사람이 없음을 실감한 안중근의 마음은 무거웠다.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신한촌에서 땀 흘려 준비한 일, 손가락을 자르며 맹세하던 일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전 9시에 오래전부터 사진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를 기억한 안중근은 그의 등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하얼빈역에 울려 퍼졌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태연하게 품속에서 간직했던 태극기를 펼쳐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안중근은 로씨야 헌병에게 체포되어 일본사령관에 인계되었고 여순 감옥에 감금되어 갖은 악형과 심문을 받았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세계에 널리 퍼졌다. 1910년 4월 16일 영국신문에서 세계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거머쥔 채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략했다고 보도했다.
중화민국을 창립한 존중산은 “안중근의 공적이 삼한과 만국을 돕고 백세와 춘추에 빛나리라”고 했고 1931년에 일본에서도 ‘안중근 의사’란 연극 공연이 있었다. 전 흑룡강성의 장수 천레이는 “안중근은 내 맘속에 애국열정의 불을 지펴주었다. 내가 항일혁명투쟁에 나선 계기는 안중근을 숭배하고 따라 배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에 안중근 의사는 나라의 독립을 기도하며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그는 최후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가져다 안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며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은 32살의 젊은 나이로 민족독립의 성스러운 싸움에 생명을 바쳤다.
대한제국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권이 박탈당하고 급기야 일본제국에 의하여 한일합방으로 쓰라린 망국의 길에서 일본군과 투쟁하며 목숨을 다해 헌신하신 애국자들의 나라사랑을 배우자. 멀지 않아 남과 북이 평화통일이 되는 그날에 한민족의 동포들이 얼싸안고 기뻐하며 살아갈 그 날이 한 걸음 더 가까이 왔음을 기억하고 오늘과 내일도 자유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사랑하자.
▲최선 박사 삼백만운동본부 상임대표/한국교회공보 논설위원/극동방송 칼럼니스트/OCU대학교 겸임교수/GOODTV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한국작가회의/샬롬의 나비효과 외 34권/시인/작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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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칼럼]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 - 뉴스앤넷
강대국들에 의한 식민지 확장과 강력한 개방 압력으로 조선은 망국의 길에 있었다.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변화를 주려고 했으나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의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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