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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왜 유명 탈북자로 내세워주지?

하나멜 2022. 11. 1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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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왜 유명 탈북자로 내세워주지? - 뉴스앤넷

‘맛 좋은 할머니 뼈다귀 우림 탕’이란 난생 처음으로 남조선 거리의 간판을 보고 섬뜩했다.젊은 나의 뼈는 더 맛있다 하지 않겠나 하는 오싹함으로 온 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오싹함을 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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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좋은 할머니 뼈다귀 우림 탕’이란 난생 처음으로 남조선 거리의 간판을 보고 섬뜩했다.

젊은 나의 뼈는 더 맛있다 하지 않겠나 하는 오싹함으로 온 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오싹함을 털어내려는 본능으로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조사에 응할 정도였다.

저는 광고가 전무한 폐쇄 북한 사회 안에서 또 폐쇄된 인민군에 다년 간 복무하다 탈북 하였기에 간판을 직역하여 이해할 만큼 백지 같은 여자였다.

하지만 자유 의지 만은 천성적이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북하였다.

이 세상 가장 억압적인 북한 사회는 물론이고 엄격한 부모님의 슬하 역시 반발심이 날 정도로 싫었다.

부모님은 딸 부자의 맏딸로 태어난 저에게 특별히 엄격하셨다.

엄격의 정도는 종 다리에 아직도 맞은 상처 흔적이 있을 만큼이다.

형제 중에 나만 다리에서 주어 왔는지 잘해도 못해도 맏딸인 나만 가지고 닦달하는 것 같았다. 그 부모님이 싫어 가장 먼 곳으로 군대를 갔고 제대를 앞두고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탈북하였던 것이다.

탈북자는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저에게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북한 사람에 비하면 로또 맞은 인생이라는 관점 하에 남한 사람 같이 성실하게 한 것뿐이다.

첫 일을 시키던 사장님 부부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추후 KBS 인간 극장에 나가자 그 먼 거리에서 달려와 너는 성공할 줄 알았어! 하며 얼싸안아 축하해 주셨다. 나는 나를 위해 성실히 한 것 뿐인데 왜 들 그러지?!

내가 정말 모범 된 탈북자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지만 그럼에도 모범 됨이 있다고 따지고 보면 그것은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험악하기 그지 없는 북한 사회에서 딸을 보호하고

성실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한 엄격함이라는 것을 깨달아 졌다.

그런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떠나온 불효자임을 자인하게 된다.

더욱이 가장 미워한 것 같지만 가장 사랑한 맏딸이 실종되자

그 충격으로 병을 얻으시어 돌아가셨다니 나 이상 죄인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죄책감으로 앉아서 꺼이, 꺼이 하기보다

이를 떨쳐버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더더욱 열심히 일했다.

일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한 남자와 결혼도 하였다. 먼저 통일된 한반도의 한 가족이 된 것이다. 하나 된 남북한 사람의 신뢰를 더하듯 어렵게, 어렵게 수차의 시험관 시술로 통일 동인 늦둥이 아들도 낳아 기른다. 남편은 말한다.

남한 남자로서 북한 여자와 살아보니 통일되면 정말 남북한이 대 축복이 될 것이라 믿게 된다. 정말 그렇다. 통일은 한강의 기적 이상으로 남북한의 대 출로가 열릴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례 하나를 들어보자.

우리는 흔히 외국인을 인부로 쓴다.

이런 외국인을 수백만 명 쓰기보다 통일되어 북한 사람을 쓰면 얼마나 서로 좋은지 설명 드린다. 북한 한 달 인건비는 한국 돈 1천 원 밖에 안된다. 통일되어 이것을 100배로 올린다 해도 100만 원밖에 안 된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준다는 하늘 같은 수령보다 백 배를 더 주는 것으로 된다. 남한은 남한대로 인건비를 절반 이상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야밤의 한반도 위성 사진을 보면 남쪽은 휘황찬란하고 북쪽은 암흑 천지이다.

이념과 제도 하나 차이가 이런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들었다.

북한은 아프리카보다도 못한 지구상에서 가장 궁핍한 곳이 되었다.

막말해서 저 거지떼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통일 비용>으로

겉으론 통일을 지지해도 대부분 속으론 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통일 부담은 허구라는 것이 인건비 하나로도 충분히 설명하였다고 본다.

단언컨데 통일 20년 후 쯤 되면 북한은 남한을 따라잡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한보다 더 살기 좋은 것으로 변신 된다고 확신한다.

늦게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경전의 말씀 대로이다.

민원이 없고 또 너무나 낙후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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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열심히 하였는데 그게 모범이 된다고 강사로 추천한다.

나의 모습이 남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까지 되었다.

물론 수 십억 자산을 가진 탈북인 가족으로서 남한 정착에 성공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 비결이 무얼까?! 그 비결을 사실 그대로 나름 털어놓는다.

부자가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통상적으로 말들을 한다.

그 첫째가 부모를 잘 만나야, 둘째가 배우자를 잘 만나야, 셋째가 스스로 노력이라는 것이다.

저는 첫째 요인으로서 부모를 잘 만났다고 본다.

험악한 북한 사회에서 그래도 엄격한 가정 교육으로 저를 키우신 것이다.

저 보고 이쁘다 인상 좋다? 그것도 부모님 후사이다.

둘째 요인으로서 배우자도 잘 만났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있기에 우리가 존재하듯이

지금의 남편이 있기에 내가 <유명 탈북인>으로 되었음을 부인 못한다.

셋째 요인인 스스로 하는 노력이다.

엄격한 부모님 슬하가 어렸을 때에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지금에 이르고 보니 성실성을 본능처럼 심어 주셨던 것이다.

꼭 나 같은 경력이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 노력하는 성실성이 있으면

어디 서나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늘도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 가.

나 개인과 <유명 탈북인>으로서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일까?

부자가 되는 세가지 요소가 호 상 작용하여 <성공적 탈북인>으로 된 것은 1차 산업으로 이룩한 것들이다. 다음 단계로는 2차 산업인 가공업으로까지 나가려 한다.

또한 3차 산업이라는 서비스 분야까지 나가려 한다.

고차원적 업으로는 잠잘 때도 돈을 벌게 하는 재테크 분야로 나가려 한다.

탈북자라고 막노동만 해서는 영원히 하층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탈북인도 부자가 되려면 자본 사회의 근간인 재테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심어드리고 싶다. 그 앞서 말발이 서자면 제가 먼저 성공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욕이 아닌 자연스럽고 소박한 경제 원리적 시도들이다. 그 일례가 <이순신(장군) 투자 전법>이다.

​이것들을 실현함에 있어서 나 혼자서 다 할 수 없다.

세 명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낮다고 뜻을 가진 분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는 모색도 하고 있다.

이렇게 번 돈을 어디다 쓸까?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기에 이만한 풍족을 누린다.

그 풍족은 나와 나의 가족에만 그쳐서는 안된다고 항상 자각한다. 왜냐면 <유명인>으로 내세워 주신 사회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에서 태어난 자로서 통일을 위해 우선 기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나 같은 탈북인들은 먼저 온 통일이다. 탈북 동료들의 정착에 정신적 고무를 주고 물질적 도움도 주고 싶다.

진실 되게 조언을 주는 탈북 지인이 권고를 한다.

<이은영 펀드>(가칭)를 조성하여 물고기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전수하라고 하신다.

이 점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며 순리대로 하나하나 실현에 가려고 한다.

나를 위했지만 유명인으로 내 세워 주신 바에 감사할 줄 아는 인생이 되고 싶다.

 

이민복 (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뉴스앤넷 #이민복 #대북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