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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선교사의 북한 이야기

하나멜 2022. 12. 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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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선교사의 북한 이야기 - 뉴스앤넷

붕괴 전 공산권의 체육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체육 소식이 온통 관심사가 된 사회 오락이었다.놀 거리가 체육 소식밖에 없는 사회의 반영이다.북한은 더 했다.체육뉴스가 오락의 전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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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의 축구와 황무지에 꽃

 

붕괴 전 공산권의 체육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체육 소식이 온통 관심사가 된 사회 오락이었다.

놀 거리가 체육 소식밖에 없는 사회의 반영이다.

북한은 더 했다.

체육뉴스가 오락의 전부라고 할 정도이다.

체육에서 단연 인기가 축구였다.

축구장도 아닌 마을 대형 스피커에 모여 환호하곤 했다.

8살 인민학교(소학교)때부터 축구선수 이름이 자동적으로 외워졌다.

박두익, 박성진, 양00, 이찬명 등.

1966년 런던 세계축구선수권대회(월드컵)에서 북한팀의 활약이 사회의 말거리를 지배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후과 인지 나 역시 전문학교 축구선수였고 가장 잘 보는 것이 축구이다.

어릴 적부터 신금단(육상선수), 한필화란 이름도 귀에 못이 박혔다.

루머도 많이 돌았다. 강 팀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북한팀이다.

그런데 4강에서 포르투갈에 전반 3알을 넣고 후반 5알 먹은 것은 호텔 매방마다 배치된 매춘부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부르죠아 문화에 일시 빠져든 사상이 문제였다고 하였다.

신금단은 여성이라 보다는 남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남북한의 체육 성적은 생활 수준의 반영인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북한의 체육성적은 생활수준이 가장 좋았던 1960년대이다.

그 후 생활수준이 확연히 역전된 후 남한의 체육성적이 훨씬 좋아졌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종합 4위, 2002년 월드컵에서 4위의 성적이 말해준다.

이것이 얼마나 심술이 났으면 ‘김현희, 대한항공 폭파 테러’, ‘제2 연평 해전 도발-참수리호 침몰’ 사건을 저지를 정도였다.

이번 16강에 오른 한국팀의 ‘카타르 기적’에 북한은 어떨까.

부러우면서도 속이 뒤집어질 일 것이다. 물론 통치자를 제외한 북한사람들은 긍지감을 가질 것이다.

마감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골에 사는 외 켠의 먼 이모 이야기이다.

아빠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책 한 권이 실이 되는 6차 당대회 김일성 보고문을 새끼를 꼬면서 스피커로 들어 완벽히 외울 정도였다.

그 딸인 이모는 무용수처럼 날씬한 몸매와 고운 얼굴이 괴로울 정도이다.

뭇 남자와 몇 마디만 주고받아도 금방 말도 안되는 소문이 자자했다.

오락이 전무한 시골환경과 밤낮 일만 하는 집단농장 생활에서 시비거리, 말 거리의 타겟이 이모인 것이다.

여름방학으로 외가에 갔다가 이젠 읍에 있는 집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날이 8∙15해방절이었다. 명절이자 오랜 만에 노는 날이다.

시골에서도 숨어 살 듯한 이모가 따라나선다.

10살 되는 조카를 따라 읍 구경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당시만해도 8∙15해방절은 큰 명절로서 군적 체육행사가 있었다.

버스가 전무하니 읍까지 걸어가야 한다.

읍에 가까워지는데 뜻밖에도 이모가 걸음을 멈춘다.

“간식으로 가지고 가던 삶은 풋강냉이를 나에게 주면서 구경 하고 싶어 정작 떠나왔는데 생각해보니 다시 돌아오자면 밤 길이 되겠는데 ... 아무래도 안되겠다. 신막(읍 이름)에 사는 네가 부럽다.”

그 날씬한 몸매로 저를 꼭 안아주고는 혼자 가라고 하신다.

한참 가다가 무심코 돌아보니 그냥 그 자리에 서 계신다.

지금 생각하면 문화가 전혀 없는 황무지에 아름다운 꽃인 것이다.

* 신막 - 황해북도 서흥군 읍의 명칭

 

이민복 (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뉴스앤넷 #이민복 #대북풍선